젊은 날 순순하게 사랑을 나눴던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반드시 되찾아야 될 절대적 존재이자 이상이었다.

부와 명예, 권력이 없어 데이지를 잃어야 했던 미국 중서부 빈농의 아들 제임스 캐츠는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제이 개츠비가 되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일궈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꿈꾸었던 데이지는 경솔하고 무책임한 인물에,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꿈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허망한 것이었고 개츠비는 그 꿈만큼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그런데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개츠비 앞에 왜 붙었을까?
개츠비가 온 생애를 바쳐 되찾으려 할 만큼 데이지가 가치 있는지는 잠시 제쳐두자. 개츠비의 이상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또 꿈을 위해 취했던 방법들이 부도덕한 것이었을망정, 개츠비가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개츠비를 둘러싸고 있는 이기적 욕망에 가득찬 대부분의 인물들과 비교하면 차라리 숭고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개츠비를 ‘위대한'이라고 수식한 것이 반어적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위대한 개츠비』는 황폐한 현대 물질주의 문명 속에서 미국인의 꿈이 어떻게 무너져가는가에 대한 ‘1920년대 미국’에 대한 시‧공간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야말로 삼류소설로 치부하게 될 의미 없는 작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전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위원회는 영어 작품 중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율리시스』 다음으로 꼽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의 야망과 이상은 개인 개츠비만의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사회의 일그러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들의 전형적 인물의 상징으로 봐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데이지와 아메리칸드림’, 전혀 상관없을 이 두 단어가 어떻게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 개츠비가 이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 또 그가 돈과 성공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던 이유는, 물질적 부와 명예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이상과 꿈을 얻기 위해서였다. 개츠비가 품은 이상은 다름 아닌 ‘데이지’였다. 데이지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던 퇴락해 가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상징이다.

21세기에 발을 딛고 선 채 무엇인가를 향해 정신없이 좇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허망한 열망과 192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던 미국인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