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한점 불어오는 바람 노오란 은행잎 굴러 짙은 황혼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만남은 가을의 끝자락에 묻어난 햇살만큼이나 아쉬운 조각들이었기에 낙엽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추수 끝난 빈 들녘 논 귀퉁이에 혼자 서서 석양하늘에 흩날리는 허수아비 옷자락만큼 외론…
비개인 아침나절 뒷산에 오르다 발아래 스멀스멀 피어난 안개구름 쥐고 있는 게 많아 짧아진 팔 힘주어 휘저어보지만 헛손질이다 푸른 산허리 휘어감은 희뿌연 구름 가운데 풀어진 무명 실타래 한올한올 살아나고 남루한 무명옷 입고 있는 푸른 솔은 오히려 고귀함을 더한다 움켜쥔 주먹…
해넘이 노을 빛 채색에 잠기고 잔잔한 물결소리 어둠 불러 둘레 길 이음줄에 기댈 때 쯤 나무도 풀잎도 푸른빛 내려놓고 회색 안에 침묵한다. 사방이 소리 낮춰 명상에 잠기고 바닷물에 스며든 우주의 광폭과 하나 된 순간 집 떠난 여행지에서 달빛 마중 받으며 밤을 맞는 느낌이…
그랬다. 느긋느긋 살 오른 햇살에 여섯 꽃잎의 한들한들 농염한 치맛자락이 나부낀다 여름 내내 노닐던 바람곁에 풀어헤친 망사치맛자락 넉살떠는 바람 때문에 그만 숨긴 살빛 다 내어놓더니 봉긋한 가슴 풀어헤쳐 누구를 또 유혹하는 몸짓인가 막막한 길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손 흔들…
길을 걷는다 이미 상실해버린 방향감 권태로운 목적조차 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내가 찾는 것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미건조한 육체를 이끌고 터벅터벅 걷는다 문득, 서러워진 하늘을 본다 무채색의 먹구름이 덮어버린 그곳 예리한 빈틈에서 쏟아지는…
진회색 슬픔이다 울음의 물결이다 둥글게 휘어 돌아 징하게도 사무친 음률의 춤사위에는 흰 웃음 배어있다 하모니카 리드마다 배어있는 폭발음이 한이 되고 힘이 된다 비처럼 음악처럼 허공에 음계들 퍼진다 비브라토 눈물로 문제완 2009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분 최…
가는 귀 먹은 다슬기가 피난도 못가고 스르륵 스르륵 기어 다닌 밤 매캐한 모기향 쑥으로 대신하고 등줄기 흐르는 땀 강물에 보태려 서둘러 툼벙!!!몸을 던지네 달빛조차 삼켜버린 구름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보듬고 얼싸안고 킬킬거린다 익어 가는 민낯이 부끄러운지 다슬…
해질녘 목이 말라 창문 열고 담배 핀다 뒷주머니 넣고 다닌 땀에 젖은 지폐처럼 하루의 이마 짚어가며 빗방울 떨어진다 그렇게 시간은 가 투명한 울음으로 슬몃 잠이 들었던 메마른 영혼 깨워 내 안의 아픔을 헹궈 물꽃 피워 올린다 박현덕 시인 1967년 전남 완도 출생…
휘파람새 소리를 좇아 맨발로 달려갔다 대청마루에 엎드려 빗소리도 들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고 다정하며 환했다 복사뼈 붉은 아이 홀로 걷는 먼 길, 살 꺾인 우산을 쓴 채 흠뻑 젖어 걷는다 이따금 돌부리에 채어 우는 날도 있었다 낙서뿐인 노트와 빛바랜 책들 위로 어둠이 내린다,…
세월의 한 구비를 효산리 일대에 고대의 풍속을 암벽에 새겨 더불어 살았던 흔적을 너만이 증언 하구나 밤이면 하늘을 지붕 삼아 별을 쳐다보고 웃고 울며 모닥불 뜨겁게 피어올리고 포옹하고 사랑하며 살았으리 갈대로 몸 가리고 개울물에 잠긴 쪽빛하늘 내려다보며 히죽거리고 사람 사…
강아지도 식구 노릇하며 사느라 짖는 것 보면 대견스럽다 허투루 짖을 때도 있지만 늦여름 붙들고 있는 매미보다 그래도 서러움이 덜해서 괜찮다 여름 소리는 무르지 않다 부채질 소리, 냉국 오이 써는 소리 모깃불 타는 소리 바가지 물 등목 하는 소리 한밤중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
비와 바람과 은행잎 모처럼 비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가로수에 매달린 은행잎이 곡예를 하듯이 허공을 구르다가 낙엽이 되어 길가에 우수수 떨어진다. 어둠 속으로 살아져 가는 저 은행잎을 눈으로 밟으며 아픔의 밤길을 따라 골목길을 들어 설 때 가을비가 후두둑 머리에 떨어진다. 하늘…
오는 길 멀었어도 와서 보니 좋습니다 산자락에 예삐 핀 그대 미소 마주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의 꽃입니다 능선을 날아오르는 저 봄빛도 곱습니다 나 언제 다시 올까 설레임도 크지마는 낯익은 그대 그 눈빛 햇살보다 곱습니다 해원 박진남 광주문인협회 광주·전…
내 마음의 시 한 편을 그대에게 건넵니다 글자마다 새겨진 꽃 곱게 피길 바라면서 노을빛 대롱에 담아 은혜로이 건넵니다 먼 산길 걸어온 바람 뜨락에 머물던 밤 울먹이는 촛불 달래가며 가슴으로 수놓은 꽃 그리운 그대 품속에 안기듯이 건넵니다 박진남 중앙일보 시조 …
보리 익은 초 여름날 망향에 잠겼더니 뻐꾸기가 뻐꾹뻐꾹 여기가 거기라네 지척에 고향을 두고 못 달래 이는 향수여 이준배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보학문화연구회 이사 (전)화순문학회장
새싹처럼 돋아난 검버섯을 두어 개씩 달고 나왔어도 우리는 그저 서로의 해맑은 미소만 보고 웃는다. 어~이 하는 손놀림은 이름을 대신하고 얼싸안은 푸근함은 지난 세월을 감싸준다. 먼지 쌓인 주름 속에 어린 시절 엿보인데 귀밑의 흰머리만 웃음 속에 나풀거리고 구수한 덕담들은 …
꽃을 배웅한 오늘 그리 둘러말하지 않아도 늘 보기 좋은 빛깔의 적당한 옷을 입혀주어서 눈이 먼저 찾아준 넌 꽃을 피웠다 볕이 들어 좋은 날 바람에 스며든 해름녘 두 손 모은 세월을 지나 마음을 달래면 가시 돋친 상처에도 봄의 향연이 끝날 즈음 남겨둔 향기엔 …
물촌 내 고향 내 고향 시내에 여름이 오면 구름무늬 하늘이 찰랑찰랑 누워 있고 달궈진 돌 강변에 연붉은 패랭이가 올해도 불 붙듯 피어나고 있을까 소나무 치수만큼 살이 찐 앞산이 소망을 가득 채운 통 가슴 내밀고 언덕에 어우러진 등 굽은 찔레가지 꽃구름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을까…
목련이 진들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순리(順理) 조의연 통 통 통 토닥여서 키웠는디 퉁 퉁 퉁 퉁보들이 되야부렀으니 지들 맘대로 커부렀제 잉! 그것이 어디 맴대로 되불간디 얽히고설킨 덩굴들이 질서라고 잡아봐야 이리불거리조 저리불거지고 지 멋대로 얽혀 불제 칡넝쿨은 칡넝쿨대로 호박넝쿨은 호박넝쿨대로 지들 가는 …
2024.04.25(목) 14: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