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因果應報)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칼럼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 입력 : 2021. 04.09(금) 11:39
  • 화순군민신문
이영일 화순문화원장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임시로 기승(氣勝)을 부린다고 해도 결국 올바르지 못한 것은 오래가지 못하며, 바른 것이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과거의 선과 악의 인연에 따라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호고욕속 (好高欲速) 높은 자리엔 빨리 오르려 하는데 우자통환 (愚者通患) 이것이 우매(愚昧)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자들의 숙환(宿患)이라.

산을 좋아하는 이는 보다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출세를 좋아하는 자는 남 보다 빨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든다. 이것이 아마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외눈박이 일목어(一目魚)처럼 주변도 살필 줄 모른다면 그것은 정상인의 태도가 아니요 아주 어리석은 자들의 공통된 우환(憂患) 증세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 성리학(性理學)적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주자(朱子) 선생이 남긴 경고의 구절이다. 진리로 통하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토록 불멸의 훈구(訓句)로 통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언제 들어보아도 옳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수긍하기 때문이다. 많은 선각자들께서 남겨준 말이지만, 어떠한 사물도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이치와 법칙에 따라 생장 소멸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어떠한 지식 정보도 선인들의 경륜을 계고(稽考) 하면서 이해하려는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산을 바라보면 높은 산도 있고 낮은 산도 있다. 우거진 숲속을 거닐다 보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산림 같기도 한데 어떤 나무는 대들보 감으로 성장했는가 하면 또 어떤 나무는 가늘고 길게만 자라서 기둥감도 되기 어려운 나무들도 있다. 인간 사회의 경우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심성이 착한 이가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이도 있으며. 능력이 출중한 이도 있는가 하면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열등한 사람도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우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실 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엄연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부끄러운 역사를 누가 만드나.... 정의불매(正義不昧) 정의는 감출 수 없고 진실영구(眞實永久)진실은 영원하다 수성군림(誰姓君臨) 누가 국민에 군림(君臨)하려 하나 사필귀정(事必歸正) 옳고 그름은 반드시 정의로 돌아가는 것. 지금도 역사는 돌아가고 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물결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요동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정업불멸(定業不滅)이라 한다. 한번 지어진 업은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다. 돌아서면 지난 나이테가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의 삶이고 실상이다. 살아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즐겁게 지내다 갈 일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들이 많이 쓰는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에 눈이 멀고 남보다 좀 더 위에 서고 싶고, 좀 더 배불리 먹고 싶은 것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지만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나왔으니 인간답게 살다 가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요즈음 사회적 혼란기를 틈타고 대선 출마자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우후춘순(雨後春荀)처럼 고개를 들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난립(亂立) 현상을 일루고 있다. 산악훈련 경험도 별로 없는 자가 등산 전문가처럼 행세하려 든다면, 이는 분명히 말해서 등산 수칙을 원칙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오만(傲慢)에 지나지 않는다.

오만(傲慢)을 합리화하려면 사술(詐術)을 제1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수 없고, 변칙을 즐기려면 원칙을 뒷전으로 밀어내야 한다. 그래서 오만과 변칙은 언제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혼탁(混濁)해질 수도 있고 문란(紊亂)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결코 영원히 혼탁하고 문란한 상태로 이어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그 자체 존속의 정칙(正則)이 있고, 시민에게는 상호 간 통용(通用) 되는 양지(良知)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칙(正則)이란 사회악(社會惡)을 몰아내는 사회정의(社會正義)를 의미하며, 시민적 양지란 선과 악을 가려서 취사선택할 줄 아는 시민 공통의 판단 능력을 의미하기에 이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한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악으로 상징되는 것이 용납될 수 없거니와 선이 아닌 것은 시민 정서와 병립될 수 없다. 더욱이 다수결(多數決)의 본질은 사필귀정을 입증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사회적 혼란의 흐름을 타고 홍수로 범람하는 탁류(濁流)에 떠나려오는 부유물처럼 대선 도전이라는 명분으로 떠들어대고 있는 양상을 바라볼라치면, 첫째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모습이 거리에 넘쳐나고, 둘째는 함량미달(含量未達)의 위인(爲人)이 종횡하고 있으며, 셋째는 변색충(變色虫)처럼 정체성(正體性)을 알 수 없는 자들이 망언속어(妄言俗語)를 분별없이 말하고 있다.

그 모두가 타기(唾棄)를 금할 수 없는 역겨운 화상(畵像)들이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일반 시민들의 잠자리를 파고드는 악몽과 흉몽의 조짐을 드러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임금님이나 성인군자 및 명장을 현몽하게 되면 그것이 곧 길몽(吉夢)이라 하여 형상조차 없는 그 꿈을 사고팔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른바 우두머리를 하려는 주자라면 꿈에 나타날까 두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덕망이 없고, 신뢰할 수 없으며, 경모(敬慕)할 수 없다는 까닭 때문이다. 덕망이 있고 신의가 있으며 경모할 수 있는 인물을 가리켜 “인기” 있는 지도자라고 한다.

중용(中庸)에서 이르기를 “원지즉유망, 근지즉불염(遠之則有望, 近之則不厭)이라 하였다. 즉 멀리 떨어지게 되면 그가 있는 곳을 자꾸 바라보고 싶어지고. 가까이 가면 헤어지기 싫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을 평범한 말로 “인기(人氣)“라고 한다. 민심은 인기 있는 인물을 향해서 집주(集注) 하게 마련이다. 요즈음 사람들처럼 빨리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 해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표가 있는 곳이라 해서 허둥지둥 찾아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민심은 도덕적 덕망이 있고,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실천하고, 사회 준칙을 잘 지키는 자는 국민이 자연히 호응해 주고 표가 따르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호고욕속(好高欲速)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노자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인과응보는 사필귀정이니 사회윤리도덕을 잘 지키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창궐(猖獗)하니 건강수칙을 잘 지키어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사회로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화순군민신문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