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금)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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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농부가 소작료를 바치러 마지절 집에 왔다가 먼 발치에서 「투우도」를 보고 피식 웃었다.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는 무식한 농사꾼 주제에 그림을 보고 웃다니?’ 마지절은 단단히 화가 났다. “이 그림은 당나라 대가인 대숭의 작품이다. 그림에 대해 네가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웃는 거냐?” 그가 불같이 화를 내자 농부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 같은 농사꾼이 뭘 알겠습니까? 다만 저는 소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에 그림에 이상한 점이 보여서 웃었을 뿐입니다. 소는 뿔로 상대로 공격할 때 꼬리를 바싹 당겨 사타구니 사이에 끼웁니다. 그때는 힘 센 청년이라도 그 꼬리를 끄집어 낼 수 없을 정도지요. 그런데 이 그림의 소들은 싸우면서도 꼬리가 치켜 올라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아 웃었을 뿐입니다.”
마지절은 얼굴을 붉히며 농부의 관찰력에 탄복했다. “대숭은 이름 난 화가지만 소에 대해서는 농사꾼인 너보다도 몰랐구나. 이 그림을 애지중지한 내가 부끄럽다.”
이글을 읽고 나니 나는 제일 먼저 이 고장 출신인 투우도의 명인 오승우 화백의 작품을 보고농부의 관찰력이 틀림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 힘을 겨룰 때는 꼬리가 사타구니에 바싹 붙어 있었고, 상대를 노려보는 두 눈은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또 하나의 그림을 보는 눈이 있다.
먼 옛날 글을 배우지 못한 처녀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을 갔다. 해가 갈수록 친정 생각이 간절했지만 시부모 모시고 농사짓고 살림 꾸리느라 고향에 다녀올 엄두조차 못 냈다. 하루는 고향 친정어머니께 안부를 전할 요량으로 종이를 펴고 펜을 들었다. 그러나 글을 한 자도 모르니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고민하던 여자는 글 대신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완성된 그림은 간단했다. 굴뚝 하나와 나는 새 한 마리가 다였다. 며칠 뒤에 고향에 편지가 도착했고 그때 마침 동네 아낙들 몇 사람이 그 집에 모여 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글을 모르고 시집간 이 집 딸이 어떻게 편지를 했을까? 하고 의아해 하며 편지를 뜯어보았다. 굴뚝과 새 그림을 본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 뜻을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 뜻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때 마침 친정어머니가 돌아왔다.
사름들은 시집 간 딸에게 온 편지를 내밀며 물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래요? 우리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구먼.” 편지를 받아든 친정어머니는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향에 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올 새가 없다.”는 말이랍니다.
단번에 딸의 그림을 읽은 어머니처럼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은 천리 길도 잇는다고 그 글은 끝을 맺었다.
오래전에 나는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에 갔었다. 갤러리에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화살표 방향을 따라 한 바퀴 빙 둘러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무엇을 그려놓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많았다. 그래서 작가 선생께 물었다.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입니까? 우리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물었더니
“그것은 무엇이라고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작품이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무엇이구나. 무엇을 그렸구나 생각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그림입니다.”라는 설명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똑같은 보름달도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다르다고 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이 보는 보름달은 아름답게만 보이고 슬픔이 가득한 사람이 쳐다보는 보름달은 한없이 슬프게만 보인다고 했다.
같은 그림을 보는 눈도 보는 사람의 기분과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당나라 화가 대숭은 투우도를 잘 그렸지만 소를 많이 길러 본 농부보다 소를 보는 관찰력이 모자랐으며, 글을 모르는 시집 간 딸이 어머니께 보낸 그림 편지에는 글을 아는 사람보다 더 앞서가는 지혜가 담겨 있고, 딸의 그림편지를 한눈에 읽은 어머니의 그림 보는 눈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일이다.
김동기 프로필
화순동복 출생
「아시아서석문학」 수필부분 등단, 수필집 『바나나와 초콜릿』
현)남화토건 재직
기자 hoahn0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