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베푼 삶…언제나 ‘양심, 양심, 양심’

인터뷰
한 평생 베푼 삶…언제나 ‘양심, 양심, 양심’
도곡면 김춘섭 씨, 마을 표지석 5개 ‘전액 사비’ 설치
가난했던 어린시절부터 베풀던 삶…온 마을에 쌀 한 되씩 돌려
“날 위해 ‘덜’ 쓰고, 남 위해 ‘더’ 써야”
  • 입력 : 2021. 05.20(목) 15:03
  • 유우현 기자
김춘섭 씨와 부인 정효순 씨

각박한 세상이다. 베푼다는 것이 썰렁한 농담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인간관계. 조직생활. 직업활동. 낭만은 사라지고 차가운 계산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김춘섭(88) 씨의 이번 선행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도곡면 신덕리 1구에 거주 중인 김춘섭 씨. 지난해 김 씨는 총 다섯 개의 마을 표지석을 설치했다. 무려 ‘전액’을, 자신의 ‘사비’로.
 

▶ 한 평생 베푼 삶…언제나 ‘양심 양심 양심’

“늘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마음을 옳게 써야 한다.” 
 
양심적인 삶. 김춘섭 씨가 평소 입버릇처럼 내뱉는 표현이다. 말뿐이 아니다. 그는 가난하던 어린 시절에도 베푸는 걸 잊지 않았다.  
 
형제가 총 6남매였다는 김춘섭 씨. 형편이 넉넉치 않아 연필 하나 살 돈이 없었다고 한다. 행여 돈이라도 필요한 날이면 남몰래 눈물 훔친 날이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던 해, 결국 김 씨는 학교를 중퇴한다. 
 
"돈이라는 게 참... 그땐 어떻게든 내가 벌어야 했어. 그런데 장사를 하든 뭘 하든 밑천이 있어야 하잖아. 누가 대주기라도 하나.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정작 돈이 없어서 뭘 못했지. " 
 
그래서, 고심 끝에 시작한 것이 ‘족제비 껍질’을 벗겨다 판 것이다. 지금이야 다소 생소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적잖은 수입을 안겨줬다고. 이때의 경험이 소중한 ‘장사 밑천’이 되어 본격적인 성냥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그 후, 나름대로 돈이 벌리자 베푸는 삶도 시작됐다. 섣달그믐이면 김 씨는 마을 집집마다 성냥을 돌렸다. 당시 시세로 200원 가량의 성냥이었으니 그 액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마음을 옳게 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3년 동안 돌렸다고 한다. 
 
'옳게 쓴 마음' 덕분이었을까. 이것저것 하던 장사가 잘 돼 금액에 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김 씨는 성냥이 아닌 더 큰 것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마을에서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머릿수별로 쌀 한 되씩 나눠주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미곡리에 있던 다른 마을까지 쌀을 돌렸다고 한다. 성냥과 쌀을 등에 짊어지고 온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 셈이다.  

문병우 전 화순군수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시계.
 

▶초등학교 은사가 화순군수로, “네가 그렇게 좋은 일을...”

김 씨의 이런 선행은 화순 곳곳으로 전파됐다. 그 소문이 어찌나 빠르던지, 이내 화순군수의 방문 요청까지 있었다. 
 
“그 소리가 어떻게 들어갔을까? 화순군수님이 나를 찾았어. 그런데 당시 군수님이 나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신 문병우 군수님이셨어. 표창장하고 시계를 주시면서 내 손을 꽉 잡아주시더라고. ‘네가 그렇게 좋은 일을 했냐’ 하고...” 
 
이후에도 김 씨는 틈만 나면 베푸는 삶을 살았다. 농사일로 인부들을 부릴 때면 늘 한사람 품삯을 더 주고, 당시 귀하던 수건도 한 켤레씩 매번 선물로 줬다.  

또한 모범적인 조합 활동으로 도곡 농협에서 표창장을 받는가 하면, 주민들의 개인사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어 감사패를 받은 일도 있었다. 그 외에 자잘한 나눔까지 하면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평생을 베풀며 살아온 삶이었다.  
 
표지석과 함께 '찰칵'


▶ 다섯 동네 모두 표지석 설치…‘감사장’ 받고 ‘눈물’

김 씨의 이번 마을표지석 설치도 같은 마음에서 나왔다. '늙어서 한 가지는 해놓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늘 고민해오던 차, 한 평생을 지내온 마을에 버젓한 표지석이 없었던 게 눈에 밟혔다고 한다. 
 
"마을에 표지석을 세우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문제는 이 근방에 다섯 동네가 있다는 말이야. 내가 사는 동네만 세워야 하나, 아니면 다섯 동네 다 세워야 하나 고민했지." 
 
고민 끝에 김 씨는 결국 다섯 동네 모두 표지석을 설치하기로 한다. '좋은 일은 많이 할 수록 좋지 않겠냐'라는 부인 정효순 씨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도곡면 이장단에게 받은 감사패.

표지석 설치 이후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주민들은 물론 도곡면 관계자들까지 찾아와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마을 이장들은 김 씨 모르게 감사패까지 준비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언제 나 모르게 감사패까지 준비했는지 몰라. 그걸 받으니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왔어. 고마우면서도, 아직 내가 할 일이 더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 
 

▶ 본인 위해 ‘덜’ 쓰고 남 위해 ‘더’ 쓰고…“언제나 마음 옳게 써야”

김 씨는 앞으로도 여력이 되는 한 본인을 위해 ‘덜 쓰고 남들을 위해 ’더‘ 쓰고 싶다고 한다. 그것이 본인의 ‘마지막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태어나면 사람 노릇하고 살아야 사람이야. 그러려면 마음을 옳게 써야 해. 나쁜일 안하고 양심에 밝으면 사는 것도 오래 살게 돼. 그렇게 살다가 눈 감고 가면, 그것이 행복이지 않겠는가?" 

김 씨가 설치한 다섯개의 표지석.

웃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노부부는 '하트 좀 해보자'며 활짝 웃었다.

유우현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