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싶은 __ 김용상 시인을 만나다.

인터뷰
호남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싶은 __ 김용상 시인을 만나다.
  • 입력 : 2022. 04.29(금) 11:06
  • 김지해 기자
김용상 시인
인터뷰에 앞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전라남도 나주시 보산리의 하늘만 파랗게 보이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산골짜기의 고장에서 저의 선영땅이 있는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아담한 산골짜기 마을에서 전기불도 없고, 라디오‧수도와 문화시설이라는 찾아볼 수 없는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봄이면 아녀자들이 고사리를 꺾어다가 나주나 영산포장에 나가 팔고 장작을 지게다 지고 나가 시내에서 팔아서 근근히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외갓집에서 주신 논밭으로 겨우 논밭 몇 마지기를 지어서 살 수 있는 형편은 되었습니다.

저는 나주시 보산리(현.보산동)에서 어린 시절 나주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고등학교를 나주에서 졸업을 하고 서울의 넓은 지역에 올라가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여 나의 꿈을 이룰 것 같은 희망을 갖고 1966년도에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가난을 이겨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넓은 서울에 올라가 더 높은 꿈을 이루고자 서울로 상경한 것입니다. 서울로 상경하여 경인교대에서 초등학교 자격증을 취득하고 발령이 나지 않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서울시 공직을 시작하여 2004년도에 정년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30여 년의 공직에서도 항상 책을 같이 하고 법령을 집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법령집과 사례‧판례를 살피면서 업무를 수행하여 왔습니다. 퇴직을 하면서 이제는 있는 것이 나의 시간뿐이 없으니, 원(願) 없이 보고 싶은 책들을 보고 못다 한 학문을 하여 보자고 나름대로 각오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젊어서 못다 한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계약제 교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에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했습니다. 주로 역사, 고전문학, 한학을 하다가 나중에는 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용상 시인


시(詩)를 쓰게 된 시기와 동기는?
저는 2004 년도에 서울시 공직을 정년을 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계약제로 고향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지리산이 장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곡성의 ’고달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음에는 강진읍내에 있는 ‘영랑생가’가 있고 만덕산 중턱에 ‘다산초당’이 있으며 앞으로는 강진만이 펼쳐지고 뒤로는 ‘우두봉’이 자리 잡은 강진의 계산초등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숨 가쁘게 서울의 도시행정을 하다가 한가한 농촌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간이 있을 때면 영랑생가를 찾아가 영랑의 시혼에 젖기도 하여 보고, 만덕산의 ‘다산초당’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심(詩心)에 젖어 보고 시를 써 보기도 했습니다.

문학에 문외한이고 문학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여 보지 못한 사람이 시를 쓴 다는 게 사실은 어려웠습니다. 또 다음으로는 저의 12대조 시서(市西) 김선(金璇)은 조선 중기 선조 때 태어나고 광해군 그리고 인조 때를 살아오신 고매한 학자이시며 시인입니다.

‘시서유고집’과 ‘초당한람’의 책이 유고집으로 남아 있어 나주시청에서 시서유고집을 나주에 있는 동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김종섭 교수에 의해 할아버지의 유고집이 한역으로 번역이 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한시(漢詩)로 거의 이루어져 있으며 1.250 여수의 시를 지으셨습니다.

나주의 금성산변에 ‘오락정(五樂亭)’을 짓고 당대의 장유 계곡과 남간 나해봉등 호남의 선비들과 영산강변의 영모정을 비롯하여 세지면에 있는 ‘벽류정’ ‘소요정’ 몽탄의 ‘식영정’ 등의 정자에서 한 시대를 학문과 시와 풍류를 즐겼던 시인으로 보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유고집에 있는 한시를 이해하고, 영산강변에 있는 정자들을 찾아 유적들을 찾았으며 시서유고집의 한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방송통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이 많은 도움과 한자 1급을 확보하여 공부를 하게 되니 한시를 이해하는데 좀 더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기가 나의 문학으로 향하는 발돋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며 이 자리를 빌려 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용상 시인


시를 쓰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태도는…
제가 감히 이러한 부분을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인거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내가 시인이다. 아니면 시를 잘 쓴다고 전혀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문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 때에는 중국의 당시나 한시 등 고전문학 쪽에 즐겨 시집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항상 시를 창작하는 노력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문학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 보며, 수많은 장르가 있는 문학의 책을 잡는다는 것은 문학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글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유능한 판사는 훌륭한 판결을 위해서는 수많은 유사한 사례와 판결을 참고하며 외국에서는 어떠한 판례가 있는가? 등 항상 연구하고 고민하고 하지 않으면 훌륭한 판결문이 나올 수가 없듯 훌륭한 시를 쓰는 시인도 수많은 책과 다양한 삶의 체험과 경험을 하여야 하며 잘못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를 걱정을 하고 삶의 불합리 한 점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다른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고 찾을 수 없는 분야도 시인은 그것을 찾을 수가 있고 대안을 찾을 수가 있는 풍부한 상상력이 있고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아름답고 고뇌하는 문제를 시적 자아를 발견하면서 글을 형상화하여야 한다고 감히 봅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란 언어의 예술이다”라고 갈파하였습니다.

시란 진실하고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마음 깊숙이 줄 수 있는 '천기'의 사상 즉 하늘에서 감흥을 줄 수가 있는 글들이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든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의 세계에 청아하고 맑고 고아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배가 고프고 돈하고 탁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면서 자기의 예술의 세계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향 화순에 관한 시를 많이 쓰는데, 그 이유는?
저는 서울시 공직과 초등학교의 교사로 나의 생활을 하다가 50여 년이 다 되어 산수가 수려하고 무등산 산록에 아담하게 만연산이 안아 주는 화순으로 2014년에 낙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언 8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정착하게 된 사연으로는 지근에 자녀들이 살고 있으며 광주와 가깝고 교통의 여건도 좋고 공기도 좋고 주변에는 무등산자락에서 흐르는 물들이 지석척을 이루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요소요소에는 ‘물염정’을 비롯한 송석정, 환산정. 영벽정, 봉서루 등 아름다운 정자와 천불천탑의 운주사와 적벽풍류가 흐르는 적벽강에 김삿갓의 전대미문의 훌륭한 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이 정착하여 생을 마감한 유서 깊은 고장이며 수많은 문인들이 드나드는 문학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고 시를 읊조릴 수 있는 여건이 이만한 곳이 있을까? 특히 화순에는 ‘최경회’의 병장과 그 형제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의병활동을 하여 목숨을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과감히 던지는 의향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최경회 의병장은 주 논개와 함께 진주가 임진왜란 때 함락이 되자 그 유명한 ‘삼장사’ 시를 남기고 순직하게 된다. 이러한 훌륭한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장에서 우리가 이 고장에서 살고 있는 긍지를 나는 나의 짧은 지식으로 글로 알리게 되었습니다.

내려오자마자 화순 문학회에 가입하여 화순에 관한 글을 문학지에 올리게 되었으며 화순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유서 깊은 화순의 전통이나 깊은 향토사를 알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 화순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김용상 시인


지금까지 작품 중에서 가장 애정이 있는 작품은?
저는 고향이 나주라 어릴 때 늘 가까이서 영산강을 바라보고 봄이면 배꽃의 향기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라서 나의 유년의 추억이 있고 부모님의 삶이 묻어 나는 저의 고향의 향수적인 저의 작품 ‘내 고향 영산강아’, 운주사를 하나의 법계의 궁중으로 본 ‘운주사의 산책길에서’, 작년에 5.18 민중의 항쟁에 관한 글을 광주의 무등일보사에 입상한 ‘아 님이시여’ 등이 생각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앞으로의 목표(꿈)는?
저는 문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 남은 생애 동안 부지런히 문학 공부를 풍부하게 하여 화순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역사의 현장에서 더 나아가서 호남의 숨어 있는 문화와 역사를 찾아 호남인의 정신과 혼이 살아 있는 애환과 예찬을 노래하며, 우리 고장만의 자랑인 향토애의 사랑으로 승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며, 그 아름다운 정신을 널리 알리는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끝으로 능력도 부족한 이 사람이 화순에 정착 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일천한 사람이 감히 화순의 문화와 역사를 글로 쓰는데 누가 되지를 않았나 심히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되며. 감히 부족한 글이라도 넓은 아량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김지해 기자 hoahn01@hanmail.net